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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타락 – 간판은 ‘사랑’ 제일
 회원_989713
 2022-11-21 13:03:31  |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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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사라는 직업을 매우 경원시한다. 신앙은 삶이고 생활이어야지 종교가 직업이고 신분이며, 생계의 수단이 되어서는 매우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생계형 목사이거나 신분적 목사이기보다는 ‘신학 전공자’로 사는 사람이 훨씬 진솔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예수의 정신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교회라는 조직과 직업적 종교인에게는 별다른 믿음과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구원의 세계는 ‘교회 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인의 믿음의 ‘생활화’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 생활' 잘하는 것과 '신앙생활' 잘하는 것은 반드시 등가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것과 신앙생활 잘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자신이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교회조직 안에서 여타의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자신이 신앙생활에 열심인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저 교회라는 조직의 이너서클에 만족하며,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었을 뿐이다.

성경에서 믿어지는 예수라면 성경 밖에서도 믿어져야 하고 교회에서 믿어지는 예수라면 세상 속에서도 믿어져야 한다. 교회에서 하는 기도가 응답이 된다면 삶의 현장에서 하는 기도도 마땅히 응답 되어야만 한다. 기도의 능력은 목사의 주술적 방언이나 교회의 조직적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인의 믿음의 신실성에 있는 것이다.

교회 생활의 열심과 신앙생활의 열심은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 오늘날 교인은 ‘사랑해야 할 원수’와 ‘독사의 새끼’를 구분하지 못한다. 사랑해야 할 원수는 구원의 대상이지만, 독사의 새끼는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사랑해야 할 원수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독사의 새끼는 교회 안에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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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광훈이 교주로 있는 ‘사랑 제일 교회’가 알박기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감정가 82억에 불과한 교회를 재개발조합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알박기’에 들어가 공사를 지연시키며 무려 500억 원을 요구하였다. 이에 법원이 150억 원으로 합의를 제시하였지만, 사랑제일교회는 끝내 버티기로 일관하여 마침내 500억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한다.

사랑의 속성은 ‘희생’과 ‘헌신’이다. 희생과 헌신의 몫은 언제나 ‘자신’이어야지, 그 몫을 ‘타인’에게 전가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이웃과 사회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행위는 ‘깡패’와 ‘거지’ 둘 중 하나이다. 구걸했다면 거지요, 강요했다면 깡패이다.

그렇다면 교회 이름도 그에 걸맞게 ‘구걸 제일 교회’ 또는 ‘폭력 제일 교회’ 또는 ‘알박기 제일교회’ 등으로 바꾸어야 솔직하지 않을까? 이들의 진면목은 이념을 상업주의화하고 종교를 교조주의화해서 무지한 중생들을 현혹시키는 사회악에 불과하다.

이들의 이념과 주장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마땅히 제거해야 할 ‘사회악’이요 ‘종교적 병폐’일 뿐이다. 현상적 다양성의 문제는 언제나 근원적 동일성이 전제될 때만이 가능한 이야기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이번 용산 참사에 대해 전광훈은 ‘북한군’이 개입되었다고 거짓 선동을 하였다. 이런 망발을 일삼는 사태에 대해 침묵 방관하는 동종 업계의 목사들은 더 이상 진리를 수호하는 종교인이 아니다. 자신의 체면과 이미지 관리에만 열중하는 역겨운 삯꾼일 뿐이다.

사탄은 뿔이 달린 괴물이 아니라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적(敵)그리스도는 교회 밖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양복 입은 무당들이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 오직 자신의 욕망과 이권을 지키기 위해 타락한 권력과 야합하여 예배를 빌미로 예수를 팔고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 장사꾼들이다.

부패한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다 기어이 ‘팽’ 당하고 말 이 미련한 집단의 발악이 참으로 경이롭다. 어떻게 이렇게 무지하고 무식한 자가 목사가 될 수 있었는지, 대한민국 기독 단체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자를 파면하지 않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할 뿐이다.

한국 교회와 종교단체는 스스로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의 예언대로 머잖아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길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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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황희 교수

2022-11-21 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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