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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
정경심 교수의 최후진술. 시민 여러분, 꼭 읽어주세요
 회원_858941
 2022-11-21 13:15:31  |   조회: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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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교수 최후진술.

"재판을 오랜 시간 진행하시면서 저와 제 변호인의 의견을 개진하도록 허락하시고 이를 경청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후 진술을 하는 이 순간 무척 떨리고 힘듭니다.

'2019년 8월부터 시작된 수사와 기소, 이어진 재판!' 을 겪으면서 심신이 매우 피폐해졌습니다.

기존 기저질환에 어지럼증과 공황장애, 잦은 실신으로 정신과 치료가 추가됐고

몇 번의 낙상으로 디스크가 탈출하는 처지까지 와서 두 번의 수술을 하였습니다.

마비 증세를 오랫동안 방치하여 자칫 영구장애를 입을 뻔하였고 두 번에 걸친 시술을 하였지만 '회복은 더디고 장기간의 재활 치료를 요하며 완치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 입니다.

이 최후 진술도 통증을 견디며 병실 침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비참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난 3년간 자식들을 포함한 전가족이 수사 대상이 되고 공직에 임명된 배우자가 사퇴하고 이어 기소까지 되었던 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저립니다.

올 초 제 [별건 재판!] 이 마무리되며 4년의 중형이 확정됐고, 그 여파로 딸아이의 입학이 취소되며 혹한의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가혹한 현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와 제 남편이 공범으로 기소돼 본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사건의 맥락과 그 속에서의 저의 진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입시 비리 공방을 하는 동안 학교 폭력을 심하게 당했던 아들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소환하는 과정에서 저 역시 그 아픔과 상처를 되살릴 수밖에 없었기에 마음이 천 갈래 만갈래 찢어졌습니다.

또 공직자 재산신고와 증거은닉 교사과 관련된 부분은 전적으로 저의 영역에서 이루어졌으니 맞아도 제가 오롯이 맞아야 하는데 '얼토당토 않게 남편이 공범' 으로 기소되었기에 저는 재판 내내 남편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가정을 이루면 좋은 엄마 좋은 아내를 소망합니다. 저 또한 그런 소망으로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저의 재판을 통해 딸아이의 삶을 망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쩌면 남편과 아들의 전부까지 망칠 수 있겠구나, 천하의 나쁜 아내와 엄마구나 하는 자괴감에 쌓여있습니다"

"먼저 공직자 재산신고와 관련하여 피치 못하게 저희의 개인사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교 1학년 집안을 일으키고 생활비를 조달하는 것은 저와 동생이었습니다"

"1993년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고 실직하였고 석방되는 1994년 저와 딸아이를 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가정 경제의 운영은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1997년 imf 위기로 시아버님 회사가 부도가 난 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알아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저에게 그는 재산에 대해서 묻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맹세코 제 남편 조국은 주식을 매매한 사실이 없습니다. 주식 매매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매달 수령하는 월급으로 기본적인 생활비와 자신의 경비를 충당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추가의 돈을 더 버는 일이나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 등 남들이 다 관심을 가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2017년에 민정수석이 되어 재산 공개를 하게 되었을 때 제가 확인해 보니 그의 예금 총액은 약 4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돈 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창의적인 일 정치적인 일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이 때문에 속칭 돈 되지 않는 일로 저보다 훨씬 더 바빴습니다.

가끔은 경제적 무능력자라고 놀렸지만 동시에 존경하였습니다"

"사모펀드로 공격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남편은 제가 가입을 했고 조범동이 소개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소한 투자에 대해 남편은 알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책임지는 영역에서 남편이 공범으로 기소됐으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2012년 초 저는 아들이 한영외고에 입학한 이후 약 1년간 지속적인 학교 폭력에 시달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피해자 7~8명의 학부형과 함께 공동으로 학교에 가해자 징계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제 아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아들의 성적은 2012년 봄을 기해 올 A에서 올 F로 수직 낙하했습니다"

"엄마가 지방대에서 교수를 하면서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에 사표를 낼까했지만 남편이 극구 말렸고 죄의식에 이때부터 아들을 직접 챙겼습니다"

"방학 때마다 아들을 동양대에 데려다 놓고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며 제가 하지 못할 때는 남편에게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2013년 여름방학 서울대 공익인권센터 에서의 인턴은 이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학폭에 시달린 자식을 방학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그냥 놀리겠습니까. 그 아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한편 외국대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에게 맞는 시험 준비와 스펙을 준비시키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인 일입니다"

"이 법정에서 지 교수가 한 증언에서 드러나듯이 멘토링을 통해 아들의 심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에게 멘토링을 하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고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제 아들과 1시간 아니 10분만 앉아서 말을 해보시면 이 아이는 얼마나 예의 바른지 얼마나 어른의 말을 존중하며 최대한 따르려는 착한 아이인지 바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조ㅇ은 엄마가 시키는 동양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적극 도움도 주고 지역 어른들이 봉사활동을 소개하면 거기에도 참여하면서 방학을 보냈습니다l

"그런데 아들을 조지 워싱턴 대학교로 보내면서 그 애가 학폭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들을 멀리 타국에 외롭게 보내다 보니 제가 과잉 보호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학폭 피해자라는 사실 앞에 교육자로서의 엄정함이나 객관성보다는 엄마로서의 무조건적인 모성애와 보상 심리가 앞섰습니다. 대인관계를 기피하여 대학 공부의 핵심인 스터디 참여하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재학 내내 저 스스로가 세미나 원이 되고자 했던 것이 2016년 11월과 12월에 실시된 집에서 치는 온라인 퀴즈를 돕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도교수 지침을 확인하지 않은 불찰에 대해 죄송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한다는 말만 믿고 도왔던 것인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경솔했습니다.

참으로 죄송하고 반성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해야지 하면서 비협조적인 남편을 굳이 끌어들인 점에 대해서는 더욱 할 말이 없습니다"

"아들이 알아서 하게 하자는 그에게 굳이 화를 내면서까지 한 것을 몇 번이고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남편에게도 미안하다!' 는 점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30년간 강단에 서 왔는데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 남편과 아들을 가담하게 하겠습니까"

"동양대에서 컴퓨터를 가져갈 때도 남편은 없었고, 어느 시점에도 개입한 적이 없는데 남편을 기소한 것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일에 죄를 묻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전적으로 제 영역인데, 남편이 얼토당토않게 공범으로 기소돼 남편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결백했다는 점을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제 이마에는 낙인이 깊게 새겨졌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제가 얼마나 크게 4년의 징역형을 받았는가 하며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조망 너머 낮고 낮은 감옥의 독방 안에서 저는 제 삶을 천천히 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죽음과 사이를 넘나드는 처절한 시간이 참 아득해서 입밖에 내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싫었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희망에 기대어 삶을 붙잡으려는 순간마다 굳이 이러고 살아야 하나 가족이 모두 망해 버렸는데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는데 살아갈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듭니다. 하루하루를 절망과 오욕 속에서 은근히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올해 6월 디스크 파열을 겪고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면서 즉각 응급실을 찾지 않은 데는 이러한 절망과 포기심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병원을 찾아 기를 쓰고 몸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지 하는 생각, 막상 형 집행정지를 받아 두 번의 전신 마취에서 깨어날 때도 생각을 했습니다"

"척추 수술은 정말 아픈 수술입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저희 병원 생활은 통증과 재활의 싸움이었는데 무통 주사와 진통제 부작용으로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이 길을 걸으며 버티는 것은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과 지금까지 사랑해준 분들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진정 낮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수감생활의 교훈을 뼛속 깊이 반성하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동안 시원치 않은 건강으로 인하여 재판에 많은 방해가 되었던 저를 최대한 배려해 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 오랜 시간 저와 변호인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주신 점에도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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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1 13: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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