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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갈등의 저변
 회원_680798
 2023-01-24 16:00:12  |   조회: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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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메코믹신학대학원에서 일할 때 휴 핼버스태트 교수가 강의하는 목회학박사 과목 "Conflict Management"를 동시통역하던 경험이 전혀 다른 맥락에서 가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인간사회, 인간관계에서 욕망의 색깔이 다양한 한 갈등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현실이다. 다만 그 갈등의 원인과 요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길로 가는 것이 최고 지혜의 선택이다.

그러나 대개 이 '최고'의 목표는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워 그 차선의 길을 택하는 게 대다수인데, 그것은 갈등의 현장에 개입하여 정직하게 상황 판단한 연후에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라면 자신과 갈등관계에 있는 상대방 사이에 사안을 합리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우군을 조직하여 동원하고 이로써 정지작업을 하는 게 좋다고 들었다.

그때 강의 당시 한 목사님이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면 갈등 해소가 어렵고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라서 갈등 인식과 해결방식에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논평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반추하면서 이 나라, 우리 사회, 교회 포함하여 모든 사람살이의 현장과 인간관계에서는 합리적인 조율의 해법만으로는 부족하고, 합리(合理)와 짝을 이룰 정리(情理)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우리 민족이 유달리 감정이 풍부하고 정이 많은 민족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합리는 에누리없는 차가운 냉정의 방식인데 비해 정리는 에누리를 허용하는 부드럽고 따스한 온정의 방식이기에 우리네 정황 속의 갈등을 푸는 데 두루 유익해 보인다.

그래서 내가 신약성서 학자로 최근에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 이른바 '감정신학'이다. 예수의 감정, 바울의 감정, 예수와 바울에 대한 제3자의 신앙적 감정 표현 등을 주제로 대여섯 편의 논문을 써서 출판했고, 그것들을 신학적 인간 이해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 <예수와 신학적 인간학>이란 책을 최근에 냈다. 국내의 성서해석학 연구에서 아직 제대로 개척되지 않은 영역이다. 냉정한 이성과 합리의 언어로 바울 서신을 이해하려 해서는 그 내부적 진실의 절반도 챙기지 못한다는 게 내 판단이다.

교회 내 갈등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대개 사소한 감정의 얽히고설킴이 요동을 치면서 그 빌미를 제공한다. 형제와 자매로 일컬어지는 관계, 사제와 신도의 우애어린 관계, 서로 친할수록 예의 바르고 극진하게 배려하며 아끼고 사랑의 온정을 적극적으로, 그러나 겸손하게 표현하려는 열심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가 갈등 지옥인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복음으로 온기를 발하길 기대해본다.

 

출처:https://www.facebook.com/jungsik.cha/posts/pfbid0sde4rQVXj7cr4zePQh2PQuFRJgQkmKDhQraGe9EvKFddSi7xB2w7uRJM4zvRPFkil

2023-01-24 16: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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