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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
 회원_614158
 2023-03-14 15:24:12  |   조회: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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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 --

서구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냄새'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도시들엔 상하수도가 보급되기 전이었는데 인구는 늘고 있었고, 분변은 그저 집 바깥에다가 항아리에 담아 내버리고 있었으니 비위생적인 환경은 대단했을 것이다. 목욕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였던 관계로 미주나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은 "조선사람들과 말을 할 때에는 바람을 등지고 서서 할 것"이라고 인수인계를 할 정도였다 한다. (사실 근대화 이전의 유럽도 이런 환경은 조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만....)

이처럼 근대화전 조선에 처음엔 넌더리를 냈던 선교사들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조선인들을 대하면서 차츰 조선 특유의 향촌 문화에 공감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되었다. 산이 많고 기후는 수시로 빠르게 변화하는 한반도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사람들은 항상 서로 도와야 했다. 모내기를 할 때나 장마가 질 때, 태풍이 왔을 때, 가을걷이를 할 때 등 일손이 필요한 시절에 우리 조상들은 항상 서로 도우고 상부상조했다. 옥수수 몇 개 콩고물 몇 그릇이라도 남으면 이웃과 돌려 나눠 먹는 것이 당연한 풍습이었다. "인정머리"라는 말은 영어나 기타 어떤 외국어로도 번역되지 않는다. 조선만의 문화였다.

이곳 한반도에 자리잡고 산 사람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방식으로 살아 왔다. 외국인들이 그 따뜻함에 감동할 정도로, 비록 이 땅은 많은 소출을 내주지 않았을지라도,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끼리 나누는 인정은 부족하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심심챦게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녔다. 가령 옆집에서 찐 감자를 한 접시에 보내서 가져오면 어머니는 곧바로 새로 담군 총각김치든 옥수수든 하여간 뭐든 심부름을 시켜서 옆집에 보내게 했다. 이렇게 아랫집 윗집 오가며 참 많이도 심부름을 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첫 장면은 바로 내 어릴적의 그 시절 그대로였다.

이런 풍습은 많이 없어지고 있으나, 그래도 남아 있다. 태풍이나 큰 물난리같은 게 나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 세월호 때도 그랬다. 남의 불행을 단지 남의 일이라고 넘어가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공명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공부 깨나 해서 엘리트 집단에 올라가는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정서적 공감 능력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사시를 패스해서 판사 검사가 되면 그 힘을 이용해서 공동체를 도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잘나서 이렇게까지 올라왔으니 당연히 권력과 부를 누리겠다라는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다.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아예 그런 엘리트 집단들끼리 자기들만의 이해관계를 누리는 카르텔을 만들어서 끼리끼리 봐주고 착복하고 하는, 그런 세상으로 계속 가 버리고 있다.

공동체가 아니면 어찌 자신의 입신이 있고 성공이 있단 말인가? 건설회사들이 미분양이 나자 대놓고 국민 혈세로 자기들 손해를 메꿔주길 바라는 것같다. 이들이 호시절에 개발이익을 누리며 신나게 돈을 벌 때는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인정'과 공동체는 보이지 않고, 그저 이익집단과 카르텔만이 눈에 띄일 뿐이다. 누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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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15: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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