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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와 같은 자들이 교계의 리더가 되어 있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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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4 14:50:13  |   조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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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전국적인 불꽃으로 타오르는 데엔 분명 한국 기독교인들의 힘이 컸다. 당시 한국 인구가 1600만명 정도였는데 기독교인의 숫자는 인구의 1.3~1.5%정도에 불과했다 한다. 그런데 1919년 6월까지 전국의 투옥자 수 9548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2087명으로 22%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천도교보다 훨씬 많았는데 이것은 3.1운동에서 기독교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만세 운동은 3월 1일에 한정되지 않았다. 한성에서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여기서 기독교 교회와 학교들이 역할을 다했다. 의주와 평양은 목사들이 아예 주동을 하였고, 천도교와 합작도 했다. 전국에서 일제가 파악한 만세운동의 주동세력이 뚜렷한 경우가 340곳인데 그 중 기독교 주도가 78지역, 천도교 주도가 66지역이었다.

기독교도의 참여가 이렇게 적극적이고 광범위했으므로, 일제로부터의 박해도 가장 심했다. 일제는 수원 제암리 교회당에서 문을 잠그고 불을 질러 29명을 한꺼번에 태워죽였다. 1919년 장로교 총회에 보고된 사살, 타살자의 수가 52명, 체포된 신자 수가 3804명이었다. 목사, 장로는 134명으로 전체 목사/장로 중 13%나 되었다. 어째서 기독교가 이렇게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을까?

성서를 잘 읽어 보면 그 책은 억압받는 자들, 차별받는 자들, 수탈당하는 약자들의 시선에서 쓰여져 있음을 알게 된다. 히브리인들은 원래 노예들이었다. 그 노예들 사이에서 시작된 신앙이 야훼 신앙이었다. 빼앗기고 궁핍하던 자들이 절대 권력에 도전하여 노예라는 신분을 벗어던지고 자유민으로 독립하겠다는 의지가 구약 성서의 첫 시작이었다.

아무리 힘으로 억누르고 구속하고 속박하려 한다 하여도, 쇠사슬을 끊고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인간의 의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는 신앙이 싹텄다. 이것은 일제의 강압과 속박에 대항해 맨손으로 일어선 식민지 민족의 강인한 의지와 일치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의 메시아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가복음 6장의 산상수훈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중략)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나라를 빼앗긴 우리 조상들은 성서를 읽으며 예수의 말씀을 새겼고, 또한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자들로서의 희망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정신은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로서가 아니라, 빼앗기고 강탈당하는 자들의 신앙으로서 3.1 만세운동의 혈관이며 핏줄이 되었다.

그런데 일제시대가 오래 가면서 지독한 탄압 속에 결국 주류 기독교 리더들은 이러한 정신을 등지고 신사참배를 하고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들 교계 리더들은 해방 이후에 친일을 했던 흑역사를 반성하기보단 어떻게든 감추려고만 했다. 아마 친일파를 적극 등용했던 이승만의 등장은 이들, 배교한 목사들에게 메시아와 같았을 것이다. 이후의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모두가 아는 대로이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마치 예수를 따르던 민중들의 역사와 비슷하다. 가롯 유다와 같은 자들이 교계의 리더가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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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14: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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