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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정명석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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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정명석들이 아닌가
  • 딴지 USA
  • 승인 2022.07.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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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단서를 써서, 부인을 상습폭행하던 한국인 남편을 비호하고 탈북민을 범죄인 집단 취급하던 의사를, 우영우 등 한바다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막 몰아부치는 장면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통쾌하고 참 좋았는데, 이후 한바다의 장 변호사가 정명석 변호사한테 찾아와 욕을 욕을 하고 책상 치며 막 소리를 질러댔다. 몇십억짜리 클라이언트를 너때문에 날리게 됐다고 하면서.

여기서 정명석 변호사는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그 쌍욕을 다 먹고 나서 그냥 조용히 일어선다. 좋은 일 하고 나서 욕먹었네, 그냥 이런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이에 대해 최수연과 우영우는 그런 정명석에게 존경과 찬탄의 눈길을 보내는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보는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과연 "옳음과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돈과 이권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 그래서 이 씬은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주저없이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는 예수님과 공자님, 석가님 정도일 꺼같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을 그렇게 해 온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불리기에 마땅하다. 계유정난 때의 성삼문 박팽년같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약산 김원봉, 몽양 여운형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지독하게 그 반대쪽에 서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돈과 이권을 위해서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자들이다. 노덕술, 이완용, 민영휘같은 자들이다. 근데 솔직히 보통 사람이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 양심에 막 꺼리끼는데도, 내 이권을 위해선 막 나가는 것, 그거 아무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정말로 악랄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럼 그 이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떨까? 그런 일관성이 없이 행동하게 마련이다. 어떨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게 돼 있다. 99%의 사람들은 갈팡질팡하고 이렇게 저렇게 갈지자로 한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정명석 변호사는 '시대의 의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때는 자폐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불공정한 행동을 하는가 하면, 어떨 때는 힘없는 탈북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의를 세우려 소신과 양심에 선 행동을 한다.

그런 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어떤 날은 나쁜 정명석으로 무심하게 행동하고, 어떤 때는 좋은 정명석으로 행동한다. 어떤 사람은 길거리에서 아이가 맹견에 물려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냥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개를 쫓으려 뛰어나간다. 둘 다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임은정의 뉴스공장 인터뷰를 보니 그는 검찰 조직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걸 보며 질려 버린 것같다. 참다 못해 한번 확 질러버렸다. 그 댓가는 그의 평생을 흔들었다. 임은정은 그 이후로 징계받고 왕따 되고 지방청들 막 돌리고. 이런 대우들을 받으면서 자기가 갈 길을 완전히 정해 버렸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일관되게 그렇게 걸어간다.

임은정같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기껏 몇 명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한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 아침에는 정직하지 못했다가 저녁에는 정직하기도 하고 정의롭지 못했다가 정의로운 편에 서기도 하는, 이런 무수한 보통 사람들이 어느 결정적인 때에 옳은 방향을 향해 일제히 일어났을 때, 그때 역사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되는 거는, 정의는 어차피 세워질 리 없다고 치부하는 그런 비관, 혹은 내가 뭐 영웅이냐, 나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무력감이다. 우리는 모두 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리를 둘러싼 부조리와 오물들을 죄다 몸에 얼굴에 묻히고 살아간다. 안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무슨 정의의 사자랍시고...." 이런 자조감은 버려야 한다. 진실, 정의, 그리고 새로운 세상. 이런 꿈들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함께 꾸는 꿈의 힘을 믿는다" 라는 임은정의 서명처럼, 꿈이라도 같이 꾸고 있어야 한다. 그러는 중,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게 되면, 그때 역사를 바꾸게 될 것이다. 우리 모든 정명석들의 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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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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