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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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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함
  • 딴지 USA
  • 승인 2022.10.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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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20대 대선이 끝난 후 지난 7개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참담함'이었다.

물론 '분노'란 말로도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분노의 뿌리 역시 참담함에 잇대어 있다.

오롯이 윤석열에게 정권을 빼앗겨서 참담함 것이 전부는 아니다.

만약 윤석열이 국힘당에서 처음부터 발굴, 성장한 정치인이었다면 훨씬 덜 참담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을 키워주고, 그를 통해 국힘당에게 정권을 헌납한 것 때문에 참담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참담했다.

나는 평생을 개신교인으로 살았다.

심지어 개신교 목사다.

그냥 개신교 목사가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환골탈태를 위해 나름 애를 쓰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개신교가 앞장서서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현실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참담함의 골이 너무 깊었다.

결국 개신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통보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개신교인이 아니라고.

그 후 나는 또다른 종류의 갈등에 시달려야 했다.

더 이상 개신교인이 아닌 내가, 신학자나 목사들과 교우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있나? 하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신학책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것도, 내 자신이 위선자처럼 느껴지는 '가시'로 돌변했다.

그래서 많은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또 틈틈히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신학책 만드는 일을 정리하는 게 내 삶의 내적 일관성에 부합할 것 같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개신교인이 아닌 내가 개신교를 위해서 뭔가 일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는 지난 6개월 내내 그런 내적 고통에 힘들어 했다.

사업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윤석열 정권에게 한 푼이라도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은 기어코 깎으면서, 자신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위한 예산은 귀신 같이 늘리는 이 정권 담당자들을 위해, 내가 고생고생하면서 번 돈을 세금으로 낼 수는 없다는, 그런 독기가 내 마음 한켠에서 나를 괴롭혔다.

차라리 사업을 정리하고, 그냥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나도 손가락 빨면서 살자, 그런 결기가 매일 새록새록 자랐다.

그 정도로 지난 20대 대선 이후 나의 '정신적 내상'은 컸고, 지금도 크며, 앞으로 이 참담한 마음이 얼마나 더 가야 치유가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나를 진짜 괴롭히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다름 아닌, 나 혼자서는 늘 만주 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도 그 길을 가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었다.

알량한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겨우 20여명 남짓한 직원들의 생활을 생각할 때마다 함부로 결행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바짓가락이자 뒷덜미로, 늘 나를 괴롭히는 문제였다.

이렇게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매일매일 처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단언컨대, 지난 7개월 동안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고,

농담을 해도 그게 진짜가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연기고, 쇼였다.

한 번의 선거가 나를 이렇게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평생 단 하루도 민주당원인 적이 없었던 나도,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정권의 출범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었다.

그런데 문재인 청와대와 민주당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과의 네트워크 때문에 공공기관장 자리를 꿰차고 한 때 좋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도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었는가?

내가 볼 때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오히려 민주당 정치인들 중에는 차라리 윤석열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식의 사람들도 적잖았다.

결국 정권을 빼앗겼다.

아니, 늘 내가 하는 표현대로, 자발적으로 헌납했다.

선거 이후,

문재인은 책을 읽고, 농산물을 가꾸고, 개들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는 사진을 올린다.

미국에 간 이낙연은 낙시를 해서 큰 물고기를 잡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다들 행복한가 보다, 싶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더 참담하다.

안 그래도 참담하게 사는데, 그런 소식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상대적 빈곤이란 말을 들어봤어도, 상대적 참담함이란 게 있다는 것을, 이 나이에 비로소 '몸'으로 생생하게 겪고 있다.

폐일언하고,

또다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다들 한가로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다들 '참담해서'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다들 너무 참담한데, 그런데도 어디에 하소연하고 호소할 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그 참담한 마음을 민주당 정치인들이 과연 알까, 싶다.

도대체 시민들이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몇 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거리로 나와야 하느냔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듣고 싶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이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 내 참담한 마음이 지나친 욕심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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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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