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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들은,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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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들은,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 딴지 USA
  • 승인 2022.11.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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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몇 년 전의 일이다.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는데 자정을 넘긴 시간에 젊은 남자 한 명이 실려 왔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얼굴이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었고 동공도 반응이 없었다. 이미 청색증이 온 지 오래됐다. 물론 호흡도 맥박도 없었다.

곧바로 서너명이 달라붙어서 CPR을 시작했지만 누구나 이미 이 청년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환자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라, 병원 응급실이란 곳에 보호자들이 자유롭게 들고나고 하던 시기였다. 우루루 같이 몰려온 친구들이 여러 명이 있었다.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려고 이것저것 묻는데 제대로 대답하는 애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전부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진동하는 술냄새에 얼굴은 죄다 벌갰다.

언제부터 환자가 이런 상황이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질문들에 대해 이들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똑바로 못한다. 정황상으로 볼 때 이미 환자는 호흡정지가 일어난 지 오래 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하도 술이 떡이 되도록 먹었기 때문에 동료들도 제정신이 아니어서 무슨 상황파악을 전연 못 하고 있다가, 환자가 너무 이상하다고 뒤늦게 인지하고 119를 불렀을 것이다. 환자는 천식 병력이 있던 것같다고 동료들이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벌써 감은 왔다.

도착 당시 이미 환자의 심장은 전혀 움직임이 없는 상태였고 몸은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심폐소생술의 골든타임은 4분이다. 심장이 정지한 상태가 4분 이상 경과하면 벌써 뇌를 비롯해 주요 장기들의 심각한 결손이 오기 시작한다.

심정지로부터 4분 이내에 소생술을 시작했을 때 소생 가능성이 50%가 된다고 한다. 4분을 초과하게 되면, 급격히 소생 가능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심폐소생술의 효과는 얼마나 오래 하느냐보다, 얼마나 빠르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생술을 열심히 해서 혹여 심장이 다시 뛰게 된다 하더라도, 이미 뇌는 생명력을 잃고 뇌사 상태가 되기도 한다. 뇌사는 더더욱 깨어날 가능성이 없이 이후 오랫동안 가족들의 피를 말리기 마련이다.

당시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오자마자 CPR을 시작했지만, 당연히 아무런 반응도 변화도 없었다. 스탭들 모두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자가 젊어도 너무 젊었다.

이렇게 젊고 팔팔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시체가 되어 나타났다는 걸, 부모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즉 이 경우에 우리가 하고 있던 CPR은, 실제로 환자를 소생시킬 희망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행위가 돼 버린다.

시간이 좀 지나서 환자의 부모가 도착했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무슨 일인데? 왜? 이런 느낌이었다. 불안함, 금쪽같은 자식이 '안 좋다'는 소식만 전화로 들었을 뿐이었다. 자식이 죽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있는 눈치였다. 친구들은 환자의 어머니를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보거나 뒤로 돌아서 있었다.

그래도 응급실 과장이 상황을 얘기했다. ".......아드님이 사망하셨어요." 이 말을 듣고 한 5초쯤 지났을까.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지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설마설마 했었지만 의사가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장난으로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장이 어머니를 잡아 일으키며 진정하시라고 했다. 나는 그 어머니가 진정을 할 리가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그 사이 아버지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오열을 하며 응급실 바닥을 거의 굴러다니다시피하는 어머니한테 과장님과 레지던트가 다 붙어 있었고 아버지한텐 내가 얘기해야 했다.

"왜 이러고들 있는 거요?"

"이러이러해서... 아드님은 이미 도착 당시 심정지 상태였고 소생술을 했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아버지는 차분했다. 사실은 차분하다기보단 이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상태였다. 이분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좀 더 소생술을 해 보시죠." 라고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에게 자식을 한번 보고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안 보겠다고 했다. 안 보는 게 아니라 못 보는 쪽이었을 것이다.

새벽 2시부터 4~5시정도까지? 아마 그 정도였을 것같다. 2시간이 넘게 우리는 계속 손을 바꾸면서 소생술을 해야 했다. 의학적으로는 환자는 사망해 있었고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살릴 재주는 없었다.

그러나 멀쩡히 집에서 나갔던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부모한테 그런 논리적인 생각을 하라고 그러기는 어려웠다.

마침내 과장이 아버지와 한참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사망선고가 내려졌고, 시신의 얼굴은 흰 시트로 가려졌다. 어머니가 또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의사들은 죽음을 심장을 비롯해 인체의 생명작용이 멈춘 상태로 정의하고 사망 선고를 쓰고 진단서에 서명하지만, 사망한 자의 부모와 자식과 아내, 남편들은 죽음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다. 그런 이별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 가족들은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는데 그런 이별을 받아들이라고 누가 과연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그마치 154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재난을 당해 차가운 땅바닥에서 죽어갔다. 그게 무슨 연쇄살인마때문도 아니고, 미국같이 총기 난사사고가 난 것도 아니었다. 소방서며 경찰서, 최신 종합병원들이 코앞에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중에서도 완전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생각컨대, 그들의 가족들, 부모 형제 그리고 연인이나 배우자들 등은, 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것같다. 분명 아직도 이게 현실이라고 믿지 못할 것이다. 나는 혼자서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이렇게 어이없이 잃게 된 그 부모들은,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어째서 이런 현실을 그들에게 통보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을 막지 못했단 말인가?

소생술이 필요한 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인 것같다. 국가를 인체로 비유한다면, 이건 정상적인 인체 기능이 돌아가는 곳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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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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