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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니 뭐니, 유족의 동의니 뭐니.. "낚였네, 낚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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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니 뭐니, 유족의 동의니 뭐니.. "낚였네, 낚였어"
  • 딴지 USA
  • 승인 2022.11.2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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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였네, 낚였어 >

전통 상례(喪禮)에서 시신을 꽃상여에 얹고 그것을 메고 가는 사람들을 상두꾼이라 한다. 상여의 선두에서 방울을 흔들며 사설을 하는 사람을 요령잡이라 하는데, 그가 메김소리를 하면 스물네 명의 상두꾼이 그 소리를 받아 후렴구로 발을 맞추어 나아간다. 상여소리는 8분의 12박자의 느린 곡조로 호흡을 맞추어 망자에 대한 애도와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정조를 띤다. 그래서 망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처연한 상여소리를 듣는 누구나 비감에 젖어 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슬픔을 갖게 된다.

상여소리는 망자의 죽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별의 소리다. 그러므로 상여소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마을에 고하는, 정보 전달의 기능을 한다. 또 상여소리는 망자가 나고 자라며 생애의 전부를 보냈던 지상의 산천초목에 그의 죽음과 자연에로의 귀환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망자가 이 땅에 존재하였음을 천지에 선포하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의 이름이 불려짐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 조상들의 방식은 이처럼 인격적이고 자연적이며 우주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10.29참사 희생자들의 빈소에 이름도 영정도 위패도 없이 조문을 강행했다. 희생자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도대체 누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며 초상을 치룬 꼴이 된 것이다. 상가집에서 실컷 울고 난 뒤, ‘누가 죽었는데?’라고 하는 격이다. 윤석열 일당이 내세운 명분은 유족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발생한 국가적 재난 사건이다. 단순한 사적 죽음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이고 사회적 관심과 애도가 필요한 희생이라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애도해야 한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세월호 때도 유족의 동의를 구하고 명단을 공개했던가? 아니다, 국가적 재난이었고 사회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유족의 동의 없이 사회적으로 희생자의 이름을 공유하고 기억하며 애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일당이 이런 작태를 보이는 것은 유족들이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짓거리는 로마정부로부터 기인한, 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던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한 방식이다. 식민지 민중이 제국의 압제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지역으로 흩어놓고 각각의 지역에 그 지역 출신 인사를 황제의 하수인 총독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제국이 설계한 프레임에 의해 식민지는 분열되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다. 이것이 제국의 분할통치다. 식민지 백성들을 프레임으로 나누고 갈라쳐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거대 권력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통치 기술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도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아닌,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프레임이 씌워젔던 것이다.

윤석열 일당은 세월호 사건 때 유족의 결집과 그들의 애도가 전 국민의 공감을 얻어 박근혜 정부를 몰락시킨 과정을 경험했다.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래서 분할통치 프레임을 짠 것이다. ‘유족의 동의’라는 프레임을. 유족이 자신들의 비극적 사건과 그로 인한 슬픔을 외부에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눈물나는 인권 프레임을 고안한 것이다. 윤석열 일당이 언제부터 인권을 생각했던가. 자기 치부를 덮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하나의 프레임일 뿐이다. 죽음과 애도, 분노의 프레임에서 인권의 프레임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다. 인권,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이 멋진(?) 프레임에 쉽게 낚이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자신을 합리성과 다양성, 인권의식을 갖춘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프레임에 쉽게 걸려든다. 그래서 언론에서 사망자 명단을 공개한 것을 두고 ‘유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이라는 장황한 수식절을 갖다 붙이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윤석열 일당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자기가 그 프레임의 낚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떠든다.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유족의 동의 어쩌고 하면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낚였네, 낚였어, 낚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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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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