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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가 되느니.. 바울은 못 되어도 바우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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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가 되느니.. 바울은 못 되어도 바우가 되렵니다
  • 딴지 USA
  • 승인 2023.02.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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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후, 한 대형교회에서 사역할 때였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잠깐 설교 중에 했는데, 자세한 이야기도 아니고 '이런 큰 슬픔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함께 울어줘야 합니다' 정도 였습니다.

설교 후 교육부 담당 부목사가 호출하더니 화를 내더군요.

당시 청소년부 담당이었는데, 그 청소년부 교사 중 한 명이 당시 국힘당 국회의원 이었던 장로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듣기 얼마나 불편하시겠냐?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왜 하냐? 여기에 국회의원 있는거 모르냐?' 라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 땐 잘릴까 봐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 '뭐 이런 병신이 다 있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은 안 했지만 굉장히 불쾌하고 병신같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악의 병적 근원을 치유하시는 의원이시라면, 사역자를 비롯한 교사나 장로 등의 교회 리더들은 간호사 정도는 되겠죠.

간호사 분들의 업무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주사를 아프게 놨다, 알약 못 먹는데 알약만 줘서 화가 난다, 아파서 죽겠는데 자꾸 뭐 검사하라고 해서 짜증난다, 척 보고 병세를 못 알아봐서 돌팔이다 등등 말도 안되는 일로 트집을 잡고 심할 때는 폭력도 사용한다더군요.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보면서 간호사를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병을 고치려면, 그들의 말과 지시를 따르고 성실히 치료에 임해야 합니다.

내 입맛에 맞게 치료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다릅니다.

내 입맛에 맞게 설교해라,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성경관점이니 바꿔라, 저 사람은 이걸 싫어하고 그 사람은 저걸 싫어하니 다른 걸 말해라 등등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남는 이야기는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 내지는 기복밖엔 남지 않습니다.

그저 날마다 좋은 이야기, 듣기 좋은 말들,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만 남습니다.

그렇게 남은 것들을 잘 추스려서 쇼맨십으로 승화시킨 인간이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 저자) 같은 사람입니다.

저희교회는 작은 교회인데, 예배와 설교가 끝나면 함께 나누는 이야기 중에 종종 등장하는 것이, "사람 오지 않을 설교" 라는 겁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인기 있는 설교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갈등과 번민이 큽니다.

성도들이 원하는 걸 말해야 하지 않나, 듣고 싶은 것을 듣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뭐 잘난 인간이라고 입바른 소리하고 있나,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좋은 말들만 할까 등...

현대는 자본주의의 시대입니다.

내가 내면, 원하는 것을 받습니다.

내가 낸 것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받으면 바로 화를 내고 싸웁니다.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돈이 왕입니다.

그러니 내가 돈을 내고 듣는 설교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그리고는 바꾸고 고치라고 합니다.

듣지 않으면 내 쫓든가 교회를 옮겨 버리면 그만입니다.

교회가 가족이라는 생각은 순진하고 멍청한 환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런 현대의 흐름 속에서 독야청청 산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열정과 마음, 전부를 쏟아내어 헌신한다고 할지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저 고집만 세고 교만한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자기 기준과 반성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소비자의 취향과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신학도로서의 자존감, 목회자로서의 사명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감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내가 감동 받는 이야기들이 은혜로운 이야기고, 내가 긍정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은총입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세례를 받아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면, 자신은 이미 치유 받아 성화되었고, 그러니 다 알고 있는 죄의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사순절이나 부활절 같은 때나 하면 될 일이지, 왜 자꾸 자신의 죄책감을 자극해서 사람을 다운되게 만드냐고 따집니다.

그런 말과 생각을 하는 자체가 성화와는 완전히 반대인 병적인 삶을 산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간호사에게 말도 안되는 일로 분노하는 비상식적 환자들은 욕하면서 교회에서는 치유의 말씀을 거부하는 현대의 교회 모습.

호기롭게 나는 다를 것이다, 이 악습의 고리를 끊겠다 라고 교회를 개척했지만.

사실 지금도 힘들고 고민되고 갈등합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혼자 설교하고, 혼자 찬양하고, 혼자 기도하는 일이 너무나 슬픕니다.

그냥 현실적으로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부흥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숫자가 늘어 교회 운영이 원활해지고 삶이 평탄해진다고 한다면.

그건 목회나 사역이 아니라 사업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듣기 싫어도, 사람들이 멀리해도, 너만 잘났냐고 욕을 해도, 저는 매일 망해갈 겁니다.

제가 망하고 말씀이 말씀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전달이 된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가족과 자녀들에게는 줄 것이 없어 미안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망하고 원망을 듣는다고 해도 말씀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께 완전히 사로잡혀 미쳐있으니까요.

십자가를 알면서도 끝까지 그 길을 가셨던 예수님의 마음, 죽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예수님을 증거했던 바울.

그 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습니다.

요즘 농담조로 전 "바우" 라고 합니다.

예수님 처럼 산다는 건 말도 안되고, 혹여 바울은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흉내는 내어서 바울에서 하나 부족한 바우는 되겠다고.

사업가가 되느니, 망하는 바우가 되렵니다.

전 망해도 말씀은 망하지 않습니다.

부디 말씀의 흥왕의 기쁨을 맛보시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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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atan Caleb Kang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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