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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기독교 구원관, 성경을 제대로 읽고 관점을 제대로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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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기독교 구원관, 성경을 제대로 읽고 관점을 제대로 가져야 합니다
  • 딴지 USA
  • 승인 2023.03.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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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기독교 구원관

유방암 3기 치료중인 한 여인이 기독교 신앙에 입문해 예수님을 믿고자 교회에 다니는데 구원의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해법을 묻자 법륜 스님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답변을 했다. 바깥 타자의 목소리가 더러 참신하게 들리고 내부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유익한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 나로서는 예수님을 처형한 로마 병정을 사형집행 교도관에 빗대면서 예수님의 용서 가르침을 설파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가 기독교에 대해 관용의 관점에서 초신자를 상담해준 것이 고맙고, 이러한 초보적일망정 간절한 질문에 대해 출석교회 목사보다 스님한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찾아간 현실이 좀 미안하다. 나라면 이런 상담의 자리에서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

“암 치료 중에 무교였던 제가 예수님을 믿고자 결심하고 매주 교회를 나가는데, 아직 구원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길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질문자가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긍정적인 마음을 낼 수 있다면 질문자는 구원을 받게 되는 거예요. 죽음 앞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과 웃고 지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 상황에서 나를 못 박은 사람을 저주할 거예요.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를 못 박은 저 두 사람은 지옥에 쳐넣어버리세요' 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모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릅니다' 하는 구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못 박은 두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말하면 교도소 직원과 같은 사람입니다. 판사가 법원에서 사형을 판결하면 교도소 직원이 죄수를 사형시키잖아요. 예수님이 생존하셨던 당시에 사형 집행 방법은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사형이 판결되면 죄수를 데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고 생사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교도소 직원의 일상적인 업무였어요. 죄수가 죽어서 십자가 하나가 비어야 다른 죄수를 또 매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으로 찔러보고 안 죽었으면 빨리 죽으라고 한 번 더 찌르는 행위를 해야 했던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악독한 행위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해야 했던 하루 일과에 불과했어요. 어부가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듯이, 푸줏간에서 일하는 사람이 고기를 썰듯이, 그들에게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하루의 일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 그냥 하루 일과를 보냈을 뿐인데 지옥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본인을 못 박은 그 사람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신 겁니다. 그래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이전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죄인을 유황불로 지지는 벌을 내리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모든 죄를 다 포용하고 감싸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즉, 유대의 하나님은 벌을 주는 하나님이라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이었다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죄인의 잘못을 포용하고 품어주는 사랑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된 거예요. 기독교 신자들이 '성부여!' '성자여!' 하고 외치는 것은 이런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길을 질문자가 믿는다면 죽음이 왜 두려워요?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을 누가 좌우한다고 말해요?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잖아요. 머리카락을 희고 검게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이 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를 믿는다면서 죽고 사는 걸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되겠어요? 나를 하늘 나라로 데려가든지 말든지 그건 주님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두려움이 생겨요?

구원이 무엇인지 몰라서 두려움이 생기는 게 아니라 신앙심이 없어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일이 뭐가 있고, 잔머리를 굴릴 일이 뭐가 있어요?

‘태어나고 죽는 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주님께 맡긴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게 되면 천당에 가는 것이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계속 살게 되면 아이들하고 같이 살 수 있으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자유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따질 게 아니라 이런 원리에 맞게끔 관점을 가지고 믿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주님 오래 살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부자는 재물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는 게 많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얻으려고 하는 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에요.

그러니 성경을 제대로 읽고 관점을 제대로 가져야 합니다. 질문자는 안 죽고 살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지는 거예요. 원하는 대로 되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구원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만든 구원의 개념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면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야죠.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것이고, 안 죽으면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뭐가 겁이 나요? 스님이 보기에는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만나놓고 구원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걸 보니 질문자는 신앙심이 없는 게 아니라 신앙의 관점이 제대로 안 잡혔다고 할 수 있어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종교에 의지하고자 했던 것이 저의 소박한 바람이라 생각했는데,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 또한 제 욕심이었던 것 같아서 내려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려놓을 것도 없어요. '욕심이네' 하면 벌써 내려놓아진 거예요. 욕심을 부리면 내 손해라는 것을 깨달으면 계속 욕심을 부리겠어요? 음식을 먹고 싶은데 누군가 여기에 쥐약이 들었다고 말하면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 그래?' 이러고 멈추겠죠. 괴로움의 원인이 욕심이라면 욕심을 버리면 되고,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이라면 집착을 버리면 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욕심을 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바로 욕심이라면 욕심을 버리라는 겁니다. 자식들과 더 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괴로워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오래 살 수 있으니까 좀 괴로워하면서 살더라도 나중에 행복할 기회라도 있죠. 질문자는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오히려 질문자는 더욱더 웃으면서 살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오래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근심 걱정을 하는 것은 하루라도 더 사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병으로 인한 육체적 통증은 어쩔 수 없지만, 괴로워하고 좌절한다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괴로움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게 신앙 아니겠어요.

그러니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시길 바랍니다. 나를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이런 저런 원인을 찾아서 괴로울 수밖에 없는 핑계만 대지 말고 ‘나는 행복할 수 있다’ 하는 가벼운 관점을 갖고 밝은 얼굴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출처가기

By Jungsik Cha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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