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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그리고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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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그리고 수치심
  • 딴지 USA
  • 승인 2023.12.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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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러 들어가면서 상영관에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는 것을 오랫만에 본다. 코로나 이후 어떤 영화도 이런 북새통을 보질 못했다. 나는 보러 온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다. 놀랍게도 나같은 50대 관객이 대다수가 아니었다. 청년부터 노인층까지 전 연령이 다 앉아 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온 초딩 어린이들까지 보였다.

이 영화에서 연출이 어땠고 연기가 어땠고 그런 평따위는 쓰지 않으려 한다. 나는 결말을 뻔히 알면서 2시간 반을 앉아 있는 내내, 우리 젊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고 나올지를 궁금해했다. 우선 아들한테 영화 소감을 물어봤다. 아들이 한 첫 마디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안타깝다'였다. 그리고 국민이 저런 일이 있었는데 왜 가만 있었느냐고 묻는다. 또한 그 이후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궁금해했다. 물론 국민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바로 몇 달 후에 5.18이 일어났고 그건 한국사 최악의 비극이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아내는 자살했고 아들은 의문사했다. 헌병감 김진기, 특전사령관 정병주, 그리고 전사한 김오랑 중령, 그 가족들은 힘들게 살았다. 반면 쿠데타의 주역 장세동 허화평을 비롯, 하나회 일당은 자손 대대로 떵떵거리고 심지어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정의에 대한 갈망이 분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현대사는 늘상 힘 있는 편에 붙어서 정의를 외면한 자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지켜야 할 가치를 붙들었던 사람들은 비참해졌음을 기록해왔다. 예외가 없었다. 장태완과 전두환을 정우성과 황정민이 연기하면서 스토리를 끌고 간 이 영화는,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 것같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장태완이나 정병주, 김오랑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면 노태우와 하나회 일당들에게 붙었겠는가. 그 선택에서 치뤄야 할 댓가를 알면서도 그리할 수 있을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육군참모차장을 비롯해 대다수의 군인들은 정의를 외면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았다면, 전두환 노태우 일당이 아니라 그들의 반역 행위를 외면한 자들에게 훨씬 더 큰 분노를 느껴야 한다. 집단으로 강간을 저지르는 폭력배들을 보면서도 그냥 길을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짓이었다.

나는 우리 세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첫 번째 느낌은 '수치심'이라고 아이에게 얘기했다. 2시간 반 내내, 저런 놈들에게 통치를 받으면서 12년을 꼼짝 못하고 살았다는 데 대한 수치심이 우리 세대의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이걸 아들 세대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바로 윗 세대인 586 (지금은 686이겠지만) 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친일파와 군사독재를 바로잡지 못한 채 살아갔다. 나의 세대는 그 잔당들을 척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보안사처럼 수사권으로 반란을 일으킨 검찰 특수부 세력이 하나회처럼 국가 권력을 자기들끼리 나눠 먹고 나아가 정권 연장까지 획책하는 음모를 보면서도 우리는 무력하다.

이제 미래는 mz세대들의 것이다. 이들에게 부끄럽기만 하지만 이들은 이런 꼴을 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79년 12월의 밤에는 하나회 일당들의 전차들이 수도경비사령부를 짓밟고 정권을 찬탈했고 2019년에는 검찰 특수부 수사관들이 그런 짓을 반복했다. 우리 자식들의 시대에는 또 어떤 인간들이 그 짓을 반복할 지 모르겠다.

아들에게 이 말도 덧붙였다. 하나회가 이긴 이유는 그들이 잇권과 탐욕을 향해 뭉친 집단이기 때문이다. 반면 반란군을 진압하는 쪽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로서 뭉치려 했지만 실패했다. 즉, 인간은 잇권으로 뭉칠 때 강하며 가치로써 뭉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자꾸 지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었다. 정의로움의 편에 선 자들이 승리하는 법이 없었다. 이 전통이 대체 언제 깨어질 지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황정민이 화장실에서 신나게 웃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전두환은 노환으로 화장실에서 죽었다. 민주주의를 화장실 휴지처럼 쳐박은 범인의 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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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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