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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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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 딴지 USA
  • 승인 2023.11.3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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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왔다, AI가. 내 생전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AI가 일상으로 이렇게 빠르고 깊게 파고들 줄 몰랐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내가 꼰대라서가 아니라 예언자적 감수성 때문이다. 예언자란 미래 사건을 예언하는 사람(predictor)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 대해 해석하여 그것의 선악을 분별하고, 또 그것이 가져올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려는, 민감한 촉수를 가진 사람(prophet)이다. 목사들은 인간과 시대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예언자적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Chat GPT가 등장한 지 1년 만에 그 성장과 진화 속도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5백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AI는 인류가 5백만 년 동안 성장시킨 지적 능력을 1년 만에 이루고 말았다. 물론 지금의 Chat GPT로 대표되는 AI가 등장하기 전 단계의 과정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 모든 기간을 다 합친다 하여도 인류의 진화 속도에 비하면 경악할 정도로 빠르다. AI라는 새로운 존재가 일으킬 사태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것의 성장과 진화 속도는 더 무섭다.

AI에 대해 이해하고 분석하여 그것이 일으킬 사태에 대비할 시간도 없이 이미 우리 일상에 빛의 속도로 들어와 버렸다. 일부 신학교와 목회자들은 그것을 교회 성장, 전도, 설교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한 발 앞서 나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전도 전략과 광고(전도지) 제작에 필요한 소스들을 손쉽게 찾고 편집할 수 있다. 성경 본문을 입력하고 그 본문에 맞는 설교문 작성을 명령하면 AI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설교 한 편을 뚝딱 만들어 준다. 마우스와 키보드가 도깨비 방망이가 된 것이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한 목회자 모임에서 <AI 시대의 종교와 신앙의 위치>라는 타이틀로 강의한 적이 있다. 두 시간에 걸친 그 날의 강의에서 나는 선량한 젊은 목회자들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만들어버렸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AI가 가져올 종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데 나는 성공했다. 교회가 닥친 커다란 위기는 출산율 저하로 인한 미래 세대의 교인 감수, 세속화로 인한 종교적 감수성 저하 등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큰 위기는 인간의 무능과 한계 안에서 의지하고 구원을 갈망하던 신(하나님)의 역할을 AI가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나 지식에 대해, 아니면 인간의 실존적인 물음들과 불행한 사태들에 대해 하나님께 묻고 의지하던 방식에서 AI에게 묻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빠른 정보와 답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 있다. 하나님의 권위가 스마트폰으로 전이된 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설교 중에 스마트폰을 누르는 교인 열 사람 중 한두 사람은 반드시 설교자가 말하는 것이 맞는지 그 내용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요즘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의 목록이 인터넷상에 심심찮게 떠돌고 있다. AI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 중 고소득 전문직에 속하는 의사, 회계사, 판사 등이 고위험군에 속한다. 디자이너, 보험설계사, 건축사, 텔레마케터 등 기능적인 직업도 마찬가지다. AI가 훨씬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오류 가능성도 훨씬 적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경제성도 사람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면 편리하고 안정적이고 경제성도 좋게 되겠지만 그로 인한 피로감이 쉽게 찾아올 것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의 따뜻한 체온과 숨결에 대한 갈망이 커지게 된다. 기계적 획일성이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적 감성, 종교적 영성 같은 것들에 대한 갈망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AI 시대에 종교가 지향해야 할 것은 기계적 엄밀성이 아니다. 천국과 지옥, 구원과 멸망, 하나님과 인간, 선과 악 등과 같은 이분법적 도식으로 사람을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는 게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구원론, 칭의론, 종말론 같은 날선 이론신학으로 사람을 질리게 만들지 말야 한다.

무엇이 맞냐, 틀리냐를 따지는 엄격한 교리적 기준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풍성한 울림을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한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직관, 생명과 존재에 대한 감성과 혜안을 가져야 한다. 이 세계와 자연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과 세계와 우주에 충만한 신성을 볼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질 수 있다.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AI 시대에 구원받는, 인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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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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